일제강점기 민족 언어와 문화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던 1926년, 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의 국어학자들과 선각자들은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지정하고 최초의 기념식을 거행했다. 이는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480년이 되는 해를 기리고, 일제의 강압적 문화 수탈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문자를 통해 지켜내겠다는 결연한 문화적 저항 선언이었다.

[출처: Bundo Kim ]
[출처: Bundo Kim ]

‘가갸날’은 1928년 오늘날의 ‘한글날’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겨레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중심축 역할을 했다. 한글날의 제정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추모하는 행사에 머물지 않고, 민족의 언어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체계화하여 미래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기 위한 거대한 학술·문화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학자들은 한글을 민족의 혼이 담긴 그릇으로 인식했다.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과 언어 말살 공작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한글을 지키는 것은 곧 민족의 생존을 지키는 일과 직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자의식은 이후 전개된 주체적인 국어 연구와 정립 운동의 강력한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훈민정음을 넘어 현대 언어로: 1933년 맞춤법 통일안과 띄어쓰기 규범화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단순히 ‘전통의 사수’나 ‘암흑기의 버티기’로만 평가하는 것은 한글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단편적으로 보는 것이다. 당시 국어학자들은 한글이 고문헌 속에 갇힌 ‘훈민정음’이라는 고전적 유물에 머물지 않고, 현대 사회의 정교한 사유와 문명을 완벽히 담아낼 수 있는 ‘현대 표준 언어’로 재탄생하도록 획기적인 체계화를 단행했다.

[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Source: New York and New Jersey, DB 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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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정적 결실이 바로 1933년 발표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다. 이 통일안은 표의주의(형태주의) 원칙을 확립하여 단어의 원래 모양을 밝혀 적도록 규정함으로써 독서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단어별 띄어쓰기 규범의 정립 이다. 훈민정음 창제 초기나 전통적인 한문 표기에서는 문장을 띄어쓰기 없이 연이어 적었으나, 조선어학회는 현대 언어로서의 가독성과 정교함을 확보하기 위해 단어 단위의 띄어쓰기를 표준 규범으로 도입했다. 이는 한글의 가독성과 표현력을 대폭 향상시키며 현대적 문어체로 완벽히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 표준 수용과 자기 것의 수호: 가로쓰기와 외래어 표기법의 유연한 조화

조선어학회가 보여준 최고의 성취 중 하나는 외세의 압력과 글로벌 표준의 물결 속에서 보여준 ‘주체적 유연성’이다. 이들은 무조건적인 전통 고수나 맹목적인 외래 요소 거부를 지양하고, 세계적 기준을 유연하게 수용하면서도 한글 고유의 체계를 견고하게 지켜냈다.

[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Source: New York and New Jersey, DB 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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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례가 글쓰기 방식의 가로쓰기(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전환 이다. 전통적인 동양의 세로쓰기 방식에서 벗어나, 서구 및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은 좌우·상하 가로쓰기 방식을 선제적으로 수용해 도서 출판, 언론, 교육 분야에 적용했다. 이는 한글이 현대적 인쇄 기술과 가로쓰기 기반의 학문 체계에 완벽히 적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또한 외래어의 유입에 대응해 1941년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제정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리와 개념을 한글의 독자적인 음운 체계 안에서 규칙적으로 수용하고 표기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한 것이다. 자기의 뿌리를 단단히 유지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와 외부 표준을 유연하게 포섭한 이러한 전략은 한글이 현대 언어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Source: New York and New Jersey, DB 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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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독립 투쟁: 조선어학회 사건과 『조선말 큰사전』 편찬의 집념

한글의 체계화와 표준화 작업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치열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일제가 일선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하던 1930~40년대, 조선어학회 학자들은 전국 각지의 방언과 표준어를 수집하여 민족 최초의 사전인 『조선말 큰사전』 편찬 작업에 매진했다.

[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Source: New York and New Jersey, DB 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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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눈엣가시로 여긴 일제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을 조작해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등 핵심 학자들을 대거 체포하고 혹독한 고문과 옥고를 치르게 했다. 이 과정에서 이윤재, 한징 선생 등 소중한 학자들이 옥사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러나 이들이 목숨 바쳐 지켜낸 사전 원고와 맞춤법 체계는 해방 직후 한국 사회가 언어적 혼란 없이 즉각적인 광복을 맞이하고, 국가적 교육 체계를 신속히 재건할 수 있었던 결정적 토대가 되었다. 조선어학회의 투쟁은 언어를 지키는 것이 곧 국가와 민족의 주권을 지키는 일임을 보여준 위대한 유산이다.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융합: 한글이 증명한 문화적 주체성과 유연한 유산

일제강점기 한글이 걸어온 길은 전통적 유산이 어떻게 현대적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독보적인 모범 사례다. 한글은 고전적 기호에 안주하지 않고, 띄어쓰기 도입, 가로쓰기 전환, 외래어 표기 체계 정립이라는 대담한 혁신을 통해 세계 어느 언어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정교한 현대 언어 체계로 진화했다.

[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Source: New York and New Jersey, DB 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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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의 강압과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자기의 본질(한글의 음운 체계와 주체성)을 확고히 지키면서도, 시대가 요구하는 표준과 형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체질을 개선한 유연함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급변하는 현대 디지털 문명 속에서 우리의 문화적 자산을 어떻게 지키고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답이 바로 일제강점기 국어학자들의 유연한 결단 속에 담겨 있다. 주체성과 유연성의 균형을 통해 완성된 현대 한글은, 오늘날 글로벌 문화의 중심에 선 한국어의 굳건한 뿌리가 되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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