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3·1운동 2주년 대회가 열린 미드타운 타운홀, 국가보훈부가 전시관을 꾸민 뉴욕한인교회, 황기환 지사가 100년 가까이 묻혀 있던 퀸즈의 묘지. 광복절에 찾아가 볼 만한 뉴욕·뉴저지의 다섯 곳을 정리했다.
8월 15일, 광복 81주년이다. 기념식은 서울에서 열리지만 그날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흔적은 상당수 뉴욕에 남아 있다. 1910년 나라가 사라진 뒤 35년 동안 맨해튼과 퀸즈, 허드슨 건너 뉴저지는 망명객과 유학생이 모여 편지를 쓰고 돈을 걷고 연설을 하던 무대였다. 그 장소 대부분이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다. 지하철이나 기차로 갈 수 있는 다섯 곳을 정리했다.
미드타운 — 타운홀, 123 West 43rd Street
브로드웨이 극장가 한복판 43가에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이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만든 정치교육연맹(League for Political Education)이 시민 토론장으로 지었고, 뉴욕공공도서관을 설계한 매킴·미드 앤드 화이트가 도면을 그렸다. 문을 연 날은 1921년 1월 12일. 건물이 올라가는 사이 수정헌법 19조가 통과돼 여성 참정권이 확정되면서, 개관 자체가 하나의 기념식이 됐다.
개관 일곱 주 만인 그해 3월 1일, 이 강당에 한인들이 모였다. 3·1운동 2주년 기념 한인연합대회였다. 참석자들은 그 자리에서 뉴욕에 한인 교회를 세우기로 뜻을 모았고, 한 달 반 뒤 실제로 교회가 생겼다.
타운홀은 지금도 공연장으로 쓰인다. 연방·주·시 사적으로 모두 등재됐고 국가역사기념물(National Historic Landmark)이기도 하다. 객석 1,500석은 기둥 없이 설계돼 '나쁜 자리가 없는 극장'으로 불린다. 공연 표를 사면 그날 사람들이 앉았던 그 객석에 앉을 수 있다.
모닝사이드하이츠 — 뉴욕한인교회, 633 West 115th Street
타운홀의 결의로 1921년 4월 18일 세워진 교회다. 처음에는 매디슨 애비뉴의 미국 감리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렸고, 1923년 첼시 21가에 자체 건물을 마련했다가 1927년 지금 자리로 옮겼다. 컬럼비아대와 유니언 신학교 사이, 유학생이 가장 많이 오가는 길목을 고른 것이다.
이승만과 안창호가 이곳에서 연설했다. 조병옥과 정일형, 김활란이 드나들었고 애국가를 쓴 안익태, 소설 『초당』을 쓴 강용흘도 이 교회를 거쳤다. 뉴욕 일대 한인들이 독립운동 자금을 들고 찾아온 곳도 여기였다.
2023년 4월, 교회 지하 1층과 2층에 독립기념전시관이 들어섰다. 국가보훈부가 미 동부의 독립운동사를 보여줄 공간을 찾다가 이 교회를 골랐다. 서부는 로스앤젤레스의 대한인국민회관이 그 역할을 해왔지만 동부에는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지하 20평 남짓한 전시실에는 1905년 11월 창간된 공립신보 창간호, 안창호와 이승만이 주고받은 편지, 당시 한인들이 쓰던 태극기가 놓여 있다. 복도 한쪽 벽에는 1902년 하와이 공식 이민부터 1910년 대한인국민회 결성, 1913년 흥사단 설립, 1919년 3·1운동, 1942년 한인국방경위대 조직까지 미주 한인 독립운동 연표가 한글과 영어로 적혀 있다. 2층에는 미디어아트 영상실과 독립운동 관련 책 100여 권을 모은 서가가 있다.
상주 인력이 목회자 두 명뿐이라 예약제로 운영된다. 교회 홈페이지(newyorkkoreanchurch.com) '독립운동 전시관' 메뉴의 방문 예약에서 신청하면 된다. 1번 열차 116가역에서 두 블록 거리다.
퀸즈 메스페스 — 마운트 올리벳 묘지, 65-40 Grand Avenue
황기환 지사가 100년 가까이 묻혀 있던 자리다. 1886년생인 그는 1917년 미군으로 1차 대전 유럽 전선에 나가 중상자 구호 활동을 했고, 종전 뒤 파리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서기장을 맡았다. 이후 프랑스와 영국, 뉴욕을 오가며 임시정부의 대유럽 외교를 담당하다 1923년 4월 17일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서른일곱이었다.
그리고 잊혔다. 미혼이라 자손이 없었고 유해를 찾을 유족도 남지 않았다. 묘를 찾아낸 것은 2008년이다. 장철우 당시 문화재찾기 한민족네트워크 뉴욕지회장 일행이 『강변에 앉아 울었노라 — 뉴욕한인교회 70년사』에서 초창기 한인 노동자들이 이 묘지에 묻혔다는 대목을 읽고 묘역을 뒤진 끝에 비석을 확인했다.
미국 법은 해외 이장에 유족 동의를 요구한다. 동의를 구할 유족이 없어 한국 정부는 법원 허가를 받는 절차를 10년 가까이 밟았다. 유해는 서거 100주기인 2023년 4월 10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7묘역으로 옮겨졌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유진 초이가 그를 모델로 삼은 인물로 알려지면서 이름이 다시 알려졌다.
지금 그 자리에 유해는 없다. 대신 1850년에 문을 연 71에이커의 묘지와, 이름 없이 묻힌 초기 한인 노동자들의 무덤이 남아 있다. 묘지는 지금도 운영 중이다.
뉴저지 프린스턴 — 로버트슨홀 강의실
이승만은 1908년 프린스턴대 박사과정에 입학해 1910년 7월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수여한 사람은 당시 총장 우드로 윌슨이었다. 윌슨은 그해 학교를 떠나 뉴저지 주지사가 됐고 2년 뒤 대통령이 됐다. 논문은 1912년 프린스턴대 출판부에서 단행본으로 나왔다.
2012년 프린스턴 한국동문회가 50만 달러를 모아 학위 100주년을 기념해 강의실 한 곳을 단장했다. 공공정책대학원이 쓰는 로버트슨홀의 80석짜리 계단강의실로, 문패에는 'Syngman Rhee 1910 Lecture Hall'이라고 적혀 있다.
캠퍼스는 개방돼 있다. 펜스테이션에서 NJ트랜싯 노스이스트코리더로 프린스턴정션까지 약 한 시간, 거기서 셔틀 열차로 한 정거장이다.
하루를 더 낸다면 — 필라델피아
1919년 4월 14일부터 사흘간, 서재필이 주도한 제1차 한인회의(First Korean Congress)가 필라델피아 17가와 딜랜시 스트리트 모퉁이의 리틀시어터에서 열렸다. 미국 각지에서 온 한인 대표들이 독립을 선언하고 임시정부 지지를 결의했다.
마지막 날인 4월 16일, 참석자들은 극장에서 독립기념관(Independence Hall)까지 행진했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그 건물 앞에서 조선의 독립을 외친 것이다. 극장 건물은 지금도 서 있고 독립기념관까지는 걸어서 20분 남짓이다. 뉴욕에서 암트랙으로 한 시간 반 거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