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아루스에서 출발한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 라 카브라가 소호 라파예트 스트리트 284번지에 자리 잡았다. 한 장씩 손으로 구운 타일로 감싼 U자형 바, 계절마다 바뀌는 원두, 그리고 카다멈 번. 커피를 '빨리 사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자리에서 읽는 것'으로 바꿔놓는 집이다.

브로드웨이-라파예트 역에서 계단을 올라와 라파예트 스트리트를 북쪽으로 몇 걸음 걸으면, 간판이 빼곡한 거리 한복판에서 유독 조용한 문 하나를 만난다. 100년 된 소호 건물 1층, 흰 천에 염소 한 마리가 그려진 작은 배너가 걸린 자리다. 덴마크 아루스(Aarhus)에서 출발한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 '라 카브라(La Cabra)'의 뉴욕 두 번째 매장이다.

이 일대는 이제 동네라기보다 하나의 런웨이에 가깝다. 카하트 WIP와 오니츠카 타이거 같은 브랜드 쇼룸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거리에, 커피 한 잔을 파는 가게가 같은 대열로 문을 연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선언처럼 읽힌다. 실제로 문을 열면 매장은 상점이라기보다 잘 정돈된 작업실에 가깝다.

매장 한복판을 U자로 감싼 바. 기계를 카운터 아래로 숨겨 손님과 바리스타 사이에 벽이 없다.
매장 한복판을 U자로 감싼 바. 기계를 카운터 아래로 숨겨 손님과 바리스타 사이에 벽이 없다.

아루스에서 코펜하겐으로, 그리고 뉴욕으로

라 카브라는 2012년 덴마크 아루스에서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생두를 직접 사들여 자기 방식으로 볶기 시작했다. 인구 30만의 소도시에서 출발한 것이 오히려 이점이 됐다고 이들은 말한다. 업계의 유행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던 덕에 남을 흉내 내지 않는 방식을 벼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방식이 알려지면서 라 카브라는 로스터리를 코펜하겐으로 옮겼고, 지금은 60개국 넘는 나라에 원두를 보낸다. 미국 첫 매장은 2021년 맨해튼 이스트빌리지 2번가에 냈다. 창업자 에스벤 파이퍼(Esben Piper)는 이 도시에 눌러앉았고, 2023년 5월 말 소호 매장의 문을 열었다. 이후 브루클린 부시윅에 북미 로스터리를 두면서, 뉴욕은 더 이상 '해외 지점'이 아니라 이 회사의 또 하나의 본거지가 됐다.

라파예트 스트리트 284번지, 100년 된 소호 건물에 내걸린 라 카브라 배너.
라파예트 스트리트 284번지, 100년 된 소호 건물에 내걸린 라 카브라 배너.

한 장도 같지 않은 타일, U자형 바

들어서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가운데로 모인다. 매장 한복판을 U자로 감싼 바가 이 공간의 중심이자 상징이다. 바를 덮은 타일은 아루스의 도예 공방 K.H. 뷔르츠(K.H. Würtz)가 만든 것으로, 한 장씩 손으로 빚어 같은 무늬가 하나도 없다. 이스트빌리지 매장에 먼저 썼던 방식을 소호에도 이어왔고, 같은 흙으로 빚은 잔에 커피를 담아낸다.

바의 남쪽에는 카운터 아래로 몸체를 숨긴 에스프레소 머신 두 대와 냉음료·차 탭이 늘어서고, 북쪽은 페이스트리 진열과 V60 핸드드립을 위한 자리로 비워뒀다. 기계가 시야를 가리지 않으니 손님과 바리스타 사이에 벽이 없다. 창업자 파이퍼는 너무 완벽하게 설계된 공간보다 조금 덜 다듬어진 구석이 있어야 손님이 편하게 공간을 둘러본다는 취지로 이 매장을 설명한 바 있다. 커피 프로그램을 짜는 방식도 같다. 모든 것을 앞에 늘어놓고 설명하기보다, 손님이 스스로 골라 들어가도록 여백을 남긴다.

계절마다 바뀌는 원두를 진열한 선반.
계절마다 바뀌는 원두를 진열한 선반.

'필터냐 에스프레소냐'를 묻지 않는 로스팅

라 카브라의 원두 봉지에는 '필터용', '에스프레소용' 표시가 없다. 커핑 테이블에서 그 원두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하나의 프로파일을 정하고, 그것으로 끝낸다. 업계에서는 이런 방식을 두 마리 토끼를 놓치는 절충으로 보기도 한다. 이들의 생각은 정반대다. 추출 방식에 맞춰 볶는 순간 원두 자체보다 기술이 앞에 서게 되고, 그러면 대화는 산지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메뉴판은 '무엇을 마실까'보다 '어느 농장을 마실까'에 가깝게 읽힌다. 계절 라인업을 필터와 에스프레소 양쪽으로 내주고, 가격대가 다른 여러 종의 필터 커피와 에스프레소 플라이트를 함께 둔다. 커피가 아닌 선택지도 허술하지 않다. 이나리 티(Inari Tea)의 차를 갖췄고, 바 한쪽에는 말차 도구가 따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필터 커피와 라테, 그리고 크루아상. 이 집이 권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합.
필터 커피와 라테, 그리고 크루아상. 이 집이 권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합.

카다멈 번, 그리고 진열장 앞에서 보내는 3분

진열장은 이 집을 처음 찾는 사람에게 가장 잔인한 구간이다. 계피 대신 카다멈 향이 올라오는 북유럽식 카다멈 번, 결이 층층이 살아 있는 크루아상, 5달러 50센트짜리 팽 오 쇼콜라, 그리고 이 집 특유의 사워도우가 나란히 놓여 있다.

카다멈 번은 라 카브라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시나몬 롤보다 단맛이 얕고 향이 길다. 커피를 밀어내지 않고 뒤에서 받쳐주는 단맛이라, 산미가 또렷한 이 집 필터 커피와 나란히 놓았을 때 비로소 제 몫을 한다. 크루아상은 겉은 부서지듯 마르고 안은 촉촉한, 정석적인 결을 갖췄다.

카다멈 번과 사워도우가 놓인 페이스트리 진열장.
카다멈 번과 사워도우가 놓인 페이스트리 진열장.
5달러 50센트짜리 팽 오 쇼콜라. 결이 층층이 살아 있다.
5달러 50센트짜리 팽 오 쇼콜라. 결이 층층이 살아 있다.
바 한쪽에 자리 잡은 말차 도구.
바 한쪽에 자리 잡은 말차 도구.

방문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이곳은 노트북을 펴는 카페가 아니다. 좌석에 콘센트가 없고, 매장 분위기 자체가 오래 앉아 일하는 쪽을 반기지 않는다. 대신 함께 온 사람과 빵을 나누기 좋은 테이블 몇 개와 창가 1인석이 있다. 앉을 자리는 이스트빌리지 매장보다 넉넉한 편이지만, 주말 낮에는 줄이 문밖까지 이어지는 날이 적지 않다.

영업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 토·일요일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다. 테이블 예약은 받지 않는다. 1인 기준 10~20달러 선이면 커피 한 잔과 페이스트리 하나를 즐길 수 있다. 구글 평점은 4.5점(1,100여 명)으로, 소호의 유동인구를 감안하면 꾸준히 높은 편이다.

창가 자리. 콘센트는 없지만 잠깐 쉬어 가기에 좋다.
창가 자리. 콘센트는 없지만 잠깐 쉬어 가기에 좋다.

커피 한 잔을 사서 걸으며 마시는 것이 이 도시의 기본값이라면, 라 카브라는 그 기본값을 잠깐 멈춰 세우는 쪽에 서 있다. 어느 나라 어느 농장의 커피인지 확인하고, 한 잔을 앞에 두고 향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 소호 한복판에서 그 한 시간을 사는 것이 이 집의 값이다.

ⓒ 뉴욕앤뉴저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New York and New Jersey. Unauthorized reproduction and redistribution prohibited.